설 대목에는 누구나 사람이 그리워진다. 고향 떠난 자식은 부모가 그립다. 부모는 객지에 나가 고생하는 자식이 안쓰럽다. [사진=연합뉴스]
이 글을 시작하기는 기차 안이다. 지난밤 부친의 제사를 지내고 상경 중이다. 기차를 타기 전 시장에 들러 설을 쇠는 데 필요한 것들을 어머니 집에 사들여 보냈다. 최소한의 장남 노릇이다.
설 대목에는 누구나 사람이 그리워진다. 고향 떠난 자식은 부모가 그립다. 부모는 객지에 나가 고생하는 자식이 안쓰럽다.
입석까지 들어차 몹시 붐비는 KTX, 설 대목을 앞두고 사람들은 벌써부터 분주하다. 이 사람들도 자기 삶의 과제와 더불어 이 나라의 운명도 걱정하고 있겠다.
제 눈 뜨기 위험한 세상
유튜브에서 ‘학원강사’ 선생께서 기자회견을 한다. 여덟 가지 ‘죄목’으로 출두한다고 한다.
요즘에는 제 눈 뜨고 있으면 위험하다. 눈을 게슴츠레 반만 떠야 한다. 살벌한 분위기에 누구라도 언제든 잡혀갈 수 있다. 가족들, 친한 친구들이 모이면 ‘입조심’하자고들 한다.
‘파출소’를 ‘민간’이 운영한다. 자기 생각과 비위에 안 맞는다고 ‘민간인’이 사법당국 흉내를 내 감시하고 제보하고 신고하고 심판하려 한다. 여기저기 한국판 ‘홍위병’들이 순라꾼 놀이를 한다. 백악관에서 초청까지 받은 ‘전 학원강사’지만 어떻게 될지 모른다.
무어라 할까? 이 나라는 맨눈을 뜨고 보면 전체주의 독재 상태 그것이다. 대통령이 내란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힌 지 어언 몇 날인가.
어떻게 절대다수가 되었는지 알 수 없는 당이 무슨 법안이라도 척척 통과시킨다. 참으로 효율적이다. 사법부를 통째로 바꾸어 놓겠다고, 법 왜곡죄, 사실상 4심제, 대법관 증원법을 신설한다고 한다. (판사한테 법 왜곡죄를 적용한다는데, 이것만은 참 잘 만들었다. 없는 내란죄를 뒤집어씌워 선고하는 법관들에게 적용하면 좋겠다.)
국민 없는 국힘과 민주 없는 민주당
이런 가운데, 지금 ‘국민 없는’ ‘국힘’은 ‘민주 없는’ ‘민주당’의 ‘동반자’나 다름없다.
‘민주당’이 속된 말로 ‘그 세력’의 명시적인 ‘1중대’라면, ‘국힘’은 잘 읽히지 않는 ‘2중대’ 노릇을 한다. 이 당의 당 대표와 어떤 최고위원은 감옥에 계신 그분을 끔찍이도 위하는 척했었다. 그런데 선고 날이 다가오자 ‘본심’을 ‘드러낸다’.
“설이면 떨어져 있던 이들도 한자리에 모이고 서러웠던 사연도 눈 녹듯 사그라들지 않던가?” [사진=한미일보]
어째서 한동훈, 김문수에 이어 또 이런 이들이 그 당의 지배세력이 되는지는 미스테리다.
이 ‘국힘’이라는 곳의 본심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회유나 협잡, 타협 따위의 산물이던가? 누구와? 어떤? 이런 판국에, 어디서 지어내는지 모르는 ‘긴급뉴스’가 타전된다.
‘전 학원강사’께서 대한민국의 나라 이름을 바꾸고, 입법부·사법부·행정부를 없애리라, 했다? 국정원 발표에 의하면 한 유튜버가 가덕도 ‘습격’ 사건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과연? (이 사건의 진실은 지금 유튜브에서조차 쫓겨나 람블로 피난 가 있다.)
긴급뉴스들이 세종대왕의 ‘어린’ 백성들 눈과 귀를 가린다. 권력 3부를 한 손에 틀어쥐고 사실상 ‘일당 독재’를 완성하려는 ‘산채 정권’의 실상은 혼잡 속에 가려진다.
잔인한 ‘통치’다. 일 년여 전, 윤 대통령에 대한 서부지법의 부당한 구속영장 발부에 항거한 사람들은 ‘점거’ ‘폭동’ ‘습격’ ‘난동’이라 명명되었다.
비교해 본다. 1985년 11월18일의 민정당 연수원 점거 농성 학생들은 전원 구속되었지만, 전체 191명 가운데 절반 훨씬 넘는 112명이 기소유예 처분으로 풀려났다.
서부지법 사태는, 137명에 대한 기소, 100명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95명 영장 발부, 69명에 대한 실형을 기록 중이다.
‘항거’에 따라 붙은 ‘점거’ ‘폭동’ ‘습격’ ‘난동’
그 당시의 점거 농성을 ‘극좌 난동’ 대신 ‘민주화 운동’이라 부르는 이들이 서부지법 청년들을 얼마나 무섭게 ‘단죄’하고 있는가. ‘사나운 정치가 범보다 무섭다’(苛政猛於虎)는 말은 옛날얘기가 아니다.
‘윤 어게인’만이 정답이라고 쓴다. 그러자 벌써부터 비난의 아우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문제를 풀 수 있는 길은 이것밖에는 없다. 그렇게 생각한다.
‘윤 어게인’이 ‘극우’라는 선동은 그 옛날 “파쇼헌법 철폐”를 좌익세력의 준동으로 몰아붙였던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사실 그때 필자는 좌익이 되고 있었다.)
거짓 명명법과 선동에 넘어가지 않도록 한다. ‘만약’, 부정선거로 국회를 장악하고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아넣고 계엄령을 내란으로 뒤집어씌우고 다시 부정선거로 권력을 잡았다면, 이 모든 야만의 부정의를 무엇으로 바로 잡을 수 있단 말인가?
단재 신채호 선생 소설에 ‘꿈하늘’이 있다. 주인공 이름이 ‘한 놈’ ‘두 놈’ 하는 ‘한놈’이다. 여럿이 같이 ‘님 나라’ 찾아가는데, 같이 가던 친구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간다. 이윽고 그 길에 ‘한놈’만이 남는다.
그러나, 오늘의 이 길에는 ‘한놈’만 있는 것 같지 않다. 유튜브를 통해 사실을, 실상을, 현실을 부지런히 실어 나르는 이들이 있다. 광화문에, 구치소 앞에, 법원 앞에 아우성치는 목소리들이 있다. 다가오는 원조자들이 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마음을 가다듬는 사이에 몸은 서울로 옮겨졌고 또 하룻밤이 지나 새벽이다. 여전히 부친의 제사와 다가올 설의 기운이 몸을 감싸고 있다. 설이면 떨어져 있던 이들도 한자리에 모이고 서러웠던 사연도 눈 녹듯 사그라들지 않던가? 그래야 한다. 소식이 멀지 않았다.

◆ 방민호 교수
문학박사, 서울대 국문과 교수. 계간문학잡지 ‘맥’ 편집주간(2022년~)이자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 ‘연인 심청’(2015), ‘통증의 언어’(2019), ‘한국비평에 다시 묻는다’(2021), 서울문학기행(202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