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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 한미칼럼] 겸손은 강자의 윤리… 겸손을 거부하는 세력들
  • 김영 기자
  • 등록 2026-05-13 12: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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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성 없는 후보가 권력을 원하고
  • 나팔수가 된 언론은 질문을 버렸다
  • 중독된 진영은 부끄러움을 잊었다

겸손은 권력이 시민의 질문 앞에 서는 태도다. 비어 있는 연단과 멈춘 카메라는 질문을 잃은 정치와 언론을 상징한다. [사진=한미일보합성]

겸손은 말투가 아니다. 고개를 숙이는 자세도 아니다. 겸손은 자신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상대에게 요구한 기준을 내 편에게도 들이댈 수 있는 용기다. 권력을 비판할 때 사용한 잣대를 자신이 권력을 잡았을 때도 견딜 수 있는 태도다.

 

그래서 겸손은 약자의 처세가 아니라 강자의 윤리다.

 

그러나 지금 정치판에는 그 겸손을 거부하는 세력들이 있다.

 

반성 없는 후보가 권력을 원하고, 나팔수가 된 언론은 질문을 버렸으며, 중독된 진영은 부끄러움을 잊었다. 이들이 결합하면 선거는 검증의 장이 아니라 권력 재생산의 통로가 된다.

 

정치인은 누구나 흠이 있고, 현직 단체장은 더 많은 평가와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선거는 흠 없는 사람을 찾는 절차가 아니다. 더 검증된 사람과 더 위험한 사람을 가려내는 절차다. 부족하면 유권자가 표로 심판하면 된다. 그것이 선거다.

 

문제는 후보들의 검증 리스크다.

 

서울의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공약 설명 논란만 안고 있는 후보가 아니다. 


성동구청장 재임 시절 멕시코 출장 과정에서 동행 공무원의 성별이 사실과 다르게 기재됐다는 이른바 ‘칸쿤 출장’ 논란이 제기됐고, 일부 성동구민은 서울시에 주민감사를 청구했다. 청구인들은 출장 배경과 성별 오기 경위 등을 감사해 달라고 요구했다.

 

정 후보 측은 공식 초청에 따른 공무였고 칸쿤은 항공 이동을 위한 경유지였으며 성별 표기는 단순 실수였다고 해명해 왔다. 


그러나 공직 후보 검증에서 중요한 것은 해명 존재 여부만이 아니다. 왜 그런 기록이 남았고, 왜 그런 의심을 불렀는지까지 설명돼야 한다.

 

여기에 성동구 재개발 과정의 굿당·아기씨당 기부채납 논란도 겹쳐 있다. 


오세훈 후보 측은 정 후보의 성동구청장 재임 시절 48억 원 규모의 굿당 기부채납 의혹을 제기하며, 행당 제7구역 재개발 정비사업 관련 문서에 재무과의 기부채납 의견과 인가 조건이 반영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성동구는 해당 기부채납은 도로·공원 등 일반 시설에 관한 절차 안내였고 굿당과는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진실은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서울시장을 하겠다는 후보에게 이런 논란이 반복된다는 사실 자체가 가볍지 않다. 공직 후보에게 필요한 것은 의혹을 피하는 기술이 아니라 의혹을 정면으로 설명하는 태도다.

 

용산 개발 공약을 둘러싼 공방도 같은 맥락이다. 정원오 후보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과 관련해 오세훈식 개발을 비판했고, 오세훈 후보 측은 용산 개발 지연의 책임을 민주당 정부 쪽으로 돌리며 맞섰다.

 

정책 공방은 선거의 정상적 과정이다. 그러나 후보가 자기 공약의 핵심을 직접, 충분히, 책임 있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남긴다면 그것은 단순한 선거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공약은 홍보물이 아니라 책임의 문서다. 후보가 직접 설명하지 못하는 공약은 시민의 삶을 책임질 약속이 되기 어렵다.

 

부산의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둘러싼 논란은 더 무겁다.

 

전 후보 본인의 뇌물수수·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는 공소시효 완성 또는 증거 불충분 등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됐지만, 국회의원 시절 보좌진 4명은 압수수색 전 PC 저장장치 파손 등 증거인멸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보도에 따르면 공소장에는 이들이 전 후보에게 보고했는지 여부가 적시되지 않았다. 법적으로 단정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묻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은 남는다.

 

왜 후보를 둘러싼 의혹은 보좌진의 기소로만 귀결됐는가. 법적으로 후보 본인의 책임을 단정할 수 없다 해도, 공직 후보에게 남는 정치적 질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법적 불기소가 곧 정치적 면죄부는 아니다.

 

공직 후보에게 필요한 것은 “처벌받지 않았음”이 아니라 “공적 책임을 감당할 자격”이다.

 

왜 이런 인물들이 다시 공직 후보로 나서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부끄러움보다 계산이 앞서기 때문이다. 

 

공약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도 진영만 등에 업으면 후보가 되고, 자신을 둘러싼 의혹의 책임이 주변 인물에게 귀착돼도 본인만 법적 책임을 피하면 된다고 여기는 정치가 굳어졌다. 

 

이들은 반성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반성하지 않는 편이 더 유리하다고 학습한 정치인들이다.

 

이제 이들은 자신을 구원받은 사람처럼 포장하기 시작했다.

 

공격을 견뎠고, 수사를 넘겼고, 진영의 선택을 받았으니 다시 공직을 맡을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치의 구원은 진영이 주는 것이 아니다. 유권자의 검증을 통과해야 한다.

 

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간증이 아니라 검증이다.

 

언론의 문제도 여기서 시작된다.

 

언론이 권력의 나팔수가 되는 순간, 기자는 질문을 버린다. 기자가 질문을 버리면 남는 것은 기사 형식을 띤 선전문뿐이다.

 

권력자를 불편하게 해야 할 언론이 권력의 말을 대신 불기 시작하면, 국민은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통치를 주입받는다.

 

언론이 조선중앙통신처럼 변하면 기자는 더 이상 기자가 아니다. 권력을 향해 질문하는 사람이 아니라, 권력의 말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확성기가 된다.

 

독재는 감시로 시작하지만, 오래가는 지배는 중독으로 완성된다.

 

감시는 시민을 위축시킨다. 누가 무엇을 말했는지, 누가 어느 편에 섰는지, 누가 권력의 언어에 동의하지 않았는지를 살핀다. 그러나 감시만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다.

 

오래가는 지배는 시민을 중독시킨다. 분노에 중독시키고, 피해의식에 중독시키고, 상대를 악마로 보는 습관에 중독시킨다.

 

그때 시민은 더 이상 감시당해서 침묵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판단을 멈추고, 스스로 권력의 변호인이 된다.

 

진영이라 불리는 지지자들에게도 도덕은 있다. 다만 그 도덕은 보편적 기준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내 편의 잘못에는 사정을 붙이고, 상대의 잘못에는 단죄의 언어를 붙인다.

 

같은 의혹도 내 편이면 정치공세가 되고, 상대 편이면 공직 부적격이 된다. 이것은 도덕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도덕을 진영의 무기로만 사용하는 상태다.

 

진영 정치의 지지자들은 도덕을 버린 것이 아니다. 도덕을 내 편에게는 방패로, 상대에게는 몽둥이로 쓰는 법을 배운 것이다.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끓는 물에 담긴 개구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처음부터 뜨거운 물이었다면 누구라도 뛰쳐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물은 조금씩 데워졌다. 의혹은 정치공세가 됐고, 무능은 실수가 됐고, 책임 회피는 탄압을 견딘 서사가 됐다.

 

그렇게 도덕의 온도가 조금씩 올라가는 동안, 지지자들은 위험을 위험으로 느끼지 못하게 됐다.

 

진영은 지지자를 설득하지 않는다. 조금씩 익숙하게 만든다.

 

선거는 후보가 국민을 바로 보고 심판을 받는 자리다.

 

당 대표의 적격 여부가 비판 대상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후보 등록 거부나 선거판 흔들기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후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유권자가 심판하면 된다. 정당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유권자가 표로 고치면 된다.

 

그러나 후보가 스스로 국민 앞에 서는 일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비판이 아니라 국민을 볼모로 삼는 저급한 판단이다.

 

뻔뻔한 후보보다 더 위험한 것은 그 뻔뻔함에 익숙해진 사회다.

 

반성 없는 후보가 권력을 요구하고, 나팔수가 된 언론이 질문을 포기하고, 중독된 진영이 부끄러움을 잊을 때 정치는 시민의 삶을 지키는 제도가 아니라 권력의 재활용 장치가 된다.

 

유권자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다.

 

박수치기 전에 묻는 것이다. 이들은 반성했는가. 설명했는가. 책임졌는가.

 

겸손을 거부하는 세력에게 지방권력을 맡기는 순간, 시민은 목적지도 모른 채 브레이크 없는 총알택시에 올라타게 된다. 그리고 그 차가 멈추지 않을 때 가장 먼저 다치는 사람은 권력이 아니라 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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