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광제 작가의 신간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가 출간됐다. 저자는 안토니오 그람시를 단순한 좌파 이론가로 봐선 곤란하다고 말한다.
그람시는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립자이자 노동운동가였지만 그가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하는 ‘분석 틀’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람시가 특정 이념을 옹호한 것이 아니라 학교, 언어, 관습, 상식, 직업 윤리, 문화적 취향 같은 일상적 요소들이 어떻게 사람들의 사고를 규정하는지를 분석했다고 강조한다.
그람시는 강제보다 동의가 먼저 작동한다고 보았고, 정치보다 문화가 오래 지속된다고 보았다. 헤게모니라는 개념은 바로 이 지점에서 탄생했다는 것. 그것은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는 구조에 대한 설명이었다.
결국 이 설명 도구를 먼저 이해한 좌파가 장기간에 걸쳐 그것을 체계적으로 활용했다. 대학과 연구소에서 개념을 만들고, 교과서와 교사 양성을 통해 이를 표준화했으며, 출판과 미디어를 통해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켰다. 즉 문화축적이 이루어진 것이다.
반면 자유주의 우파는 좌파의 영향력을 도덕적 위선이나 감정 선동으로만 설명했고 구조를 분석하지 않았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우파는 문화에서 밀리면 대중의 수준을 탓했고 교육에서 밀리면 제도만 비판했다.
책은 특정 이념을 옹호하기보다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차분히 설명한다. 또 문화, 교육, 언어, 상식이 어떻게 쌓이고 이동하는지를 하나씩 풀어 나간다. 그리고 그 구조를 자유주의자 관점에서 다시 설계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저자는 “그람시가 남긴 분석 도구는 어느 진영도 독점할 수 없다”며 “헤게모니는 다시 설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꾸준한 반복과 집요한 교육과 일상 속 언어와 문화의 축적을 통해 그것을 이루어가야 한다고 진단한다.
저자인 정광제는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로 이승만학당 이사를 지냈으며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 겸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신화가 된 조선’과 ‘다다미 위의 인문학’을 펴냈다. 현재 자유주의 문화운동의 연구와 실천을 활발하게 이어가면서 한미일보에서 松山(송산)이라는 필명으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임요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