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삼성전자 임금협상을 마친 후 여명구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 사업 담당) 피플팀장과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잠정 합의안에 서명하고 있다. [공동취재]
"삼성전자 파업이 발생했을 때의 악영향을 우리 모두가 알면서도 우리 사회가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절박하고 아쉬운 마음이다. 파업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1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 발언)
삼성전자 노사가 벼랑 끝 대치 끝에 2026년 임금협상 잠정 합의안을 도출한 것은 파업이 한국경제에 미칠 어마어마한 파급 효과에 대한 우려에 공감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민 대다수가 김정관 장관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업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피해가 1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정부가 긴급조정권 행사 가능성까지 내비친 만큼 양자가 합의를 통해 최악을 피한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 노사는 20일 오후 경기도 수원의 노동부 경기고용노동청에서 2026년 임금협상 잠정 합의안에 서명했다.
이날 오전 재개된 노사의 2차 사후조정이 결렬되면서 총파업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졌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와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 등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 하에 이날 오후 4시 25분 임금협상 교섭을 재개했다.
교섭이 재개된지 약 6시간 만인 오후 10시 30분께 노사는 잠정 합의안을 도출하고 서명했다.
노조는 이번 잠정 합의안에 대해 오는 22일부터 27일까지 조합원을 대상으로 찬반투표를 진행한다. 잠정 합의안은 재적 조합원 과반의 투표 참석과 과반의 찬성을 얻어야 최종 확정된다.
중재자로 나서는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가운데)과 삼성전자 노사 [공동취재·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3월 노조의 교섭 중단 선언과 3만여명이 참석한 4월 총결기대회, 사후조정 결렬 등 좀처럼 돌파구가 보이지 않던 노사 협상은 정·재계와 학계의 중재 노력이 겹겹이 쌓이며 성과를 만들어 냈다.
여기에 정부는 성과급을 둘러싼 삼성전자 노사의 갈등이 기업을 넘어 국가적인 피해로 번질 수 있다며 긴급조정권에 대한 압박을 이어갔다.
이재명 대통령은 20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대책회에서 "지금 일부 노동조합이 단결권·단체행동권을 통해 단체교섭을 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은데 거기에도 적정한 선이 있지 않나"라며 양보를 통한 타협을 강하게 촉구했다.
이날 오전 중 삼성전자 노사에 대한 사후조정이 불발되자 노사를 다시 한번 협상 테이블로 유도한 것이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 17일 대국민담화에서 파업이 아닌 노사간 대화를 통한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삼성전자 파업으로 국민 경제에 막대한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정부는 국민 경제 보호를 위해 긴급조정을 포함한 가능한 모든 대응 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삼성전자 제공
협상이 불발돼 총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예상됐던 피해액은 수십조원에 달한다.
노조 측은 파업으로 회사가 30조원 안팎의 피해를 볼 것이라고 주장했고,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도 최근 보고서에서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이 40조원 넘게 감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업계 일각에서는 생산시설이나 웨이퍼 등 원재료가 손상될 경우 피해 규모가 100조원을 넘을 수 있단 관측도 나왔다.
경제6단체도 코스피 시가총액의 약 25%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파업은 코스피 지수 하락과 외국인 투자자 이탈을 가속해 국내 자본시장 전반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음을 지적하며 파업 발생 시 정부가 즉각 긴급조정권을 발동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는 보도자료를 통해 "삼성전자에서 상당한 수준의 생산 차질이나 운영 불확실성이 발생할 경우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공급 병목 현상과 가격 변동성 확대, 조달 안정성, 전반적인 공급망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한층 커질 수 있다"고 밝혔다.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중국 업체들의 반사이익도 우려됐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생산 차질을 겪을 수 있단 전망이 나오면서 중국 업체들이 대체 공급처로 부상했다. 중국 정부의 천문학적 지원에 반도체 자립 영향까지 더해져 기술 격차가 더욱 좁아질 수 있었단 분석이다.
영업이익 특정 비율을 성과급 재원으로 고정 배분해달라는 노조의 요구가 기업 가치를 훼손하고 주주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주주들의 규탄도 잇따랐다.
이에 학계에서도 노조의 요구안이 상법과 대치된다고 지적했다.
이홍 광운대 명예교수는 지난 6일 열린 사단법인 '이해관계자 경영학회' 춘계 정기세미나에서 "노조가 영업이익의 15%를 정률로 배분받는 것은 일종의 선배당을 받는 것으로, 이는 노조의 '준 주주화'를 의미하며, 용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영훈 장관은 이날 노사 합의에 대해 "무엇보다 어려운 대내외 여건 속에서 가슴졸이고 지켜보고 계셨을 국민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지막까지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노사 자율 교섭으로 잠정합의에 이르게 됐다는 점에서 삼성전자 노사에 정부를 대신해 깊이 감사드린다"며 "삼성전자는 그래서 국민 기업이라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연합뉴스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