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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동상을 제자리에! 건국대통령의 위상을 제자리에!”…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김보래 씨
  • 이효주 편집위원
  • 등록 2025-08-15 23:4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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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5는 건국일… “미국은 수도·학교명, 화폐 도안에도 워싱턴 기리죠”
  • “한국 여성이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참정권 얻은 건 이승만 대통령 덕분”
  • 1984년 운동권 세력, 인하대 교정서 동상 끌어 내려… “다시 논의할 때”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의 김보래(왼쪽) 씨가 최근 <한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승만 동상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있다. 오른쪽은 인하대 교정에 있던 이승만 건국대통령 동상. [인하대 보관 사진] 

대한민국의 건국일을 아는가. 대한민국의 공식 건국일은 1948년 8월15일이다. 올해 8월15일은 광복절 80주년이면서 건국절 77주년이다. 


대한민국이 세워지기까지 치열한 투쟁의 역사가 있었다. 그리고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강고한 건국 의지가 있었다. 


최근 인천을 중심으로 ‘이승만동상세우기’ 운동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김보래(2019년 인하대 졸업) 씨를 만났다.


보래 씨는 ‘이승만동상세우기’ 운동에 참여하게 된 이유에 대해 “대한민국을 세운 분이자 제 모교인 인하대학교 설립자신 이승만건국대통령의 위상을 바로 찾아드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미국의 건국대통령 워싱턴은 버지니아주 의사당 로툰다 홀을 비롯해 조지워싱턴대학교 캠퍼스, 뉴욕 월스트리트 등 곳곳에 동상이 서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미국에서는 수도 이름, 화폐 도안, 대학교 명칭을 통해 건국대통령 워싱턴을 기리고 있죠.”


보래 씨는 미국처럼 건국대통령을 기리지는 못할망정 이승만 지우기에 열심인 현실을 개탄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인하대에 다닌다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졸업하고 오랜만에 학교를 찾았다가 재학생 한 명이 ‘건물도 너무 낡고 위치도 안 좋다’는 등 학교에 대해 불만 섞인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됐어요. 그래서 학교를 세운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제대로 알려준다면 이 친구도 인하대에 다닌다는 자부심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 점에서 동상 건립이 시급하다고 느꼈어요.”


인하대학교는 ‘인천하와이대학교’의 줄임말로 하와이 교민들의 성금으로 설립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보래 씨는 사람들이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게 너무 많다고 토로했다. 


“3·15선거 당시 이승만은 단일후보였습니다. 경쟁상대였던 조병옥 후보가 병으로 사망하면서 단일후보로 자동 선출됐어요. 다만 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이기붕이 민주당 장면을 상대로 저지른 부정행위를 당신이 책임지고 하야했을 뿐입니다. 이런 사실은 젖혀두고 정치가들이 긴 세월 그에게 부정선거 프레임을 씌워 온 것이죠.”


보수는 보수대로 좌파는 좌파대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위해 이승만을 폄훼한 것이 고착화 되어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김보래 씨. “이승만 대통령의 많은 업적 중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여자들의 권익을 찾아준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 덕에 한국의 여성들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참정권을 얻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여자들의 위상은 바닥이나 다름없었는데 이 대통령은 과감하게 여성 장관을 기용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최초로 여자인 임영신을 상공부장관으로 기용했다. 앞서 이승만 대통령은 신탁통치반대운동(1945)을 주도하고 농지개혁법(1945)을 제정한 장본인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1953) 체결 역시 빠뜨릴 수 없는 그의 공이다.


6·23전쟁 당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1951년 여름 유엔군과 공산군 간에 휴전회담이 시작되었다. 한국은 휴전을 반대하는 상황이었는데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 조건으로 미국에 한미군사동맹을 요구했다. 


결국 그의 뜻대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면서 한국의 방위력이 증강됐다. 튼튼한 국방은 한국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대한민국이 이만큼 잘살게 된 바탕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빠른 판단과 과감한 결단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6·25전쟁 중이던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의 발의로 인하공과대학이 설립됐다. 


보래 씨는 이승만 동상 세우기는 정치 논리를 넘어서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인하대학교를 설립하신 분입니다. 설립자를 기리는 것은 어느 학교나 다 하는 일이고 당연한 일이죠. 처음에 우리 학교에도 이승만 동상이 있었어요. 그런데 1984년 어느 날 인하대 교정에서 갑자기 동상이 사라졌습니다.”


운동권 세력에 의해 동상이 철거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래 씨는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나라를 세운 분이 대학교를 세운 것은 세계 역사에서도 드문 일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박사 학위를 가진 지식인이었어요. 그랬기에 교육에 대한 철학도 남달랐습니다. 늦게나마 인하대 총동문회와 자유총연맹을 중심으로 역사를 바로 세우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에요. 하지만 여전히 이승만 동상 세우기에 반대하는 이들이 있어요. 인하대 학생회와 진보계열 교수들, 일부 지역 신문이 그들입니다.”


인하대 재학생과 총동창회 사이에 동상 세우자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동상 제작 비용을 대겠다는 분들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일이 하나의 무브먼트가 되려면 더 많은 이의 참여가 필요하다. 보수 청년의 결집이 절실한 시점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8·15광복이 왜 기념되고 있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지금의 부와 자유를 가져다 준 이들이 누구인가.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위상을 찾아주는 일은 동상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게 보래 씨의 생각이다. 


이효주 편집위원 


1984년 인하대 교정에 설치됐던 이승만 건국대통령 동상이 철거되고 있다. 인하대 제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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