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서 발견된 위조 의심 투표지들 [황교안 대표/박주현 변호사 SNS GIF]
6·3 지방선거에서 불과 44표 차이로 당락이 갈렸던 경남 통영시장 선거의 재검표 현장에서 투표함 봉인 훼손과 위조 의심 투표지가 속출하면서 원고 측이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했으나 선거관리위원회가 의혹을 명확히 해소하지 않은 채 28일 새벽 “당락 변동이 없다”고 선언하며 서둘러 판을 덮어 논란이 일고 있다. 선거 정의와 절차적 공정성을 외면한 ‘깜깜이 재검표’라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빳빳한 사전투표지와 여백 불일치… 현장에서 쏟아진 ‘위조’ 의혹
애초 예정보다 1시간30분 가량 늦어진 27일 오후 3시30분부터 경남도선거관리위원회 6층 대회의실에서 절차에 들어간 재검표는 시작부터 심각한 파행을 겪었다. 소청인인 천영기 전 통영시장 측 변호인단과 참관인들이 관내 사전투표지 보관 상자를 개봉하는 과정에서 정상적인 투표지로 보기 어려운 정황을 무더기로 포착했기 때문이다.
원고 측에 따르면 봉평동·미수동·용남동 등 일부 지역의 사전투표지 다수에서 좌우 여백이 현저히 다르거나 규격에 맞지 않는 현상이 발견됐다. 사전투표지 발급 시 사용하는 엡손 잉크젯 프린터의 특성상 좌우 여백이 일정해야 함에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오류가 잇달아 포착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관내 사전투표지 상자를 개봉하자마자 확인한 첫 301장 중 접힌 흔적이 있는 투표지는 단 2장에 불과했다. 봉평동 사전투표지 52장은 오른쪽 여백이 없는 등 좌우 여백 불일치가 나타났으며 미수동에선 700장 중 187장이 동일한 여백 오류를 보였다. 국신동 관내 사전투표지 400장 중에서는 단 6장만 접힌 흔적이 있었고 용남동은 100장 중 85장의 좌우 여백이 달랐다.
또한 인쇄의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는 줄무늬가 투표지 옆면에서 다량 발견되기도 했다. 황교안 자유와혁신 당대표는 “사전투표지는 프린터로 출력하기 때문에 옆면 같은 위치에 저런 줄무늬가 나올 수 없다”고 개탄했다.
무엇보다 국신동 사전투표지 등 일부 투표지 다발은 유권자가 접어서 투표함에 넣었어야 함에도 마치 갓 뜯은 A4용지 묶음처럼 접힌 흔적이 전혀 없는 이른바 ‘신권 다발 투표지’가 빳빳한 상태로 대거 발견돼 충격을 안겼다.
투표지 뒷면의 인주 자국 유무에 따른 차이도 목격됐다. 원고 측에 따르면 투표관리관 기표인영 부분의 경우 3분의 1만 뒷면에 비치고 나머지 3분의 2는 비치지 않는 현상이 발견됐다. 원고 측은 “뒷면에 인주 자국이 비치지 않는 것은 유권자가 직접 기표한 것이 아니라 인쇄된 가짜 투표지로 의심된다”며 선관위원장에게 현미경 검증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참관인으로 참석한 전한길 대표는 “사람이 직접 기표하면 투표지 뒷면에 인주 자국이 번지기 마련인데, 자국이 없는 것은 인쇄된 위조 투표지일 가능성이 크다”고 문제 제기했다.
인주 자국이 있는 진짜 투표지(A)와 인쇄된 위조 의심 투표지(B) [박주현 변호사 SNS]
봉인 훼손과 CCTV 부재… 정밀 검증 요구 묵살한 선관위
투표지 보관 상자의 관리 상태도 논란을 키웠다. 일부 상자의 테이프 봉인 상태가 일정하지 않거나 칼자국으로 테이프가 절단된 흔적, 엉터리로 찍힌 간인 등이 목격되자 원고 측은 누군가 투표지 보관함 전체를 교체한 이른바 ‘통갈이’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투표지 보관함이 뚜껑이 열린 채 반입되면서 시작부터 거센 항의가 이어졌다. 원고 측은 이에 대해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으나 피소청인인 통영시선관위는 봉인 상태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황 대표는 “투표지 보관 장소에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았던 사실이 확인돼 이의를 신청했다”며 “투표지가 어떤 환경에서 보관됐는지, 봉인 훼손 흔적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선행돼야 함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이러한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재검표 결과 역시 국민적 신뢰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고 측 변호인단은 현미경(루페)을 통한 실물 정밀 검증, 투표지 이미지 파일과의 실시간 대조, CCTV 미설치 문제 등을 지적하며 법적 권리를 행사했다.
그러나 선관위는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선관위 측은 “CCTV가 없어도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했고 선관위원장은 영상 촬영 및 실효성 있는 검증 요구를 기각하면서 갈등을 키웠다. 나아가 “개표를 방해할 경우 퇴장 조치하겠다”며 소청인 측에 강력한 경고를 남겼다. 원고 측 변호인단과 일부 참관인들은 “명확한 사실 확인과 검증 없이 진행하는 재검표는 국민적 신뢰를 얻을 수 없다”며 반발했다.
44표에서 38표로… 의문만 남긴 채 새벽 4시 졸속 마무리
원고 측의 거센 이의 제기와 공방 속에 애초 초저녁에 끝날 예정이던 재검표는 진통을 거듭하다 자정을 넘긴 28일 오전 4시가 돼서야 마무리됐다.
재검표 결과 전체 6만9693표 중 더불어민주당 강석주 후보가 3만3626표, 국민의힘 천영기 전 시장이 3만3588표를 얻어 표차가 기존 44표에서 38표 차로 줄어들었다. 애초 무효표 1030표 중 6표가 천 전 시장의 유효표로 뒤늦게 인정되면서다.
경남선관위는 이를 근거로 “당락에는 변동이 없다”며 강석주 시장의 당선을 재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소청인이 전액 부담한 약 1922만 원의 재검표 비용과 12시간에 걸친 진통 끝에 나온 결과치고는 허무한 종결이었다.
다시 붙붙는 선거 정의 회복 논란… 법적·사회적 파장 예고
이번 재검표는 44표라는 근소한 차이에 대한 법적 검증 절차였으나 검증 방법은 물론이고 투표지 자체의 정당성을 둘러싼 양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특히 선관위가 봉인 훼손과 접히지 않은 사전투표지 등 결정적 정황을 뒤로한 채 과학적·기록적 검증을 외면하고 단순히 숫자 맞추기에만 급급했다는 지적은 향후 큰 파장을 남길 것으로 전망된다.
박주현 변호사는 “가짜 투표지에 대한 이의제기는 기각하고 투표지 이미지 파일 제출 및 실시간 대조마저 거부하는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며 “명백한 가짜 투표지 정황을 외면하는 것은 범죄나 다름없다”고 강하게 분노를 표했다.
잉크젯과 인쇄 품질 비교 [출처: 네이버블로그 채움북스]
☞루페란?
루페(loupe·또는 루빼)는 망점(halftone)을 확인함으로써 인쇄물의 진위를 가리는 도구다. 일종의 인쇄업자들이 사용하는 돋보기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인쇄 지질을 감식하는 데 사용한다. 확대함으로써 이미지 표현을 훨씬 더 정밀하게 볼 수 있다.
진짜 사전투표지는 잉크젯(엡손)프린터로 출력한다. 표면이 거칠고 불규칙적이며 조악하다.
반면 가짜로 인쇄된 위조 투표지라면 망점이 정교하고 규칙적이다.
둘의 인쇄 품질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며, 전문가들은 루페를 사용하면 손쉽게 확인된다고 말한다. 망점은 잉크가 묻는 최소 단위면적이다. 돋보기로 확대함으로써 거칠고 투박한지, 매끄러운지 구분할 수 있다. 루페가 없어도 다년간 경험을 쌓은 인쇄전문가들은 구분할 수도 있다.
이처럼 손쉽게 위조 여부를 가릴 수 있는 도구로 인식돼왔지만 지난 2021년 6월28일 민경욱 전 의원의 인천 연수을 재검표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시행된 재검표에서 재판부가 루페 사용을 허용한 적은 한 번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