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왼쪽)과 윤상현. [사진=연합뉴스]진실을 밝혀야 할 자들이 오히려 진실의 입을 막으려 선제공격에 나서는 기이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전 국민적으로 부정선거 의혹과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의구심이 터져 나오는데도, 국민의 대리인이어야 할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이를 '황당한 음모론'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라며 못을 박는다.
의혹을 규명하려는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기는커녕, 의혹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라고 강요하는 과도하고 비상식적인 광경. 상식적인 눈으로 보면 실로 당혹스러운 장면이지만, 문학과 영화의 서사 속으로 들어가 보면 이 연극의 본질이 비로소 명확해진다.
악마가 거둔 가장 큰 승리: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만드는 것'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에는 영화사를 통틀어 가장 차가운 통찰을 담은 명대사가 등장한다.
"악마가 거둔 가장 큰 승리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세상이 믿게 만든 것이다."
희대의 범죄자 '카이저 소제'는 자신의 존재를 가리기 위해 스스로를 가공의 인물이자 황당한 전설로 치부하게 만들었다. 세간에서 그의 이름을 언급할 때마다 사람들은 "그런 인물은 없다" "음모론일 뿐이다"라며 비웃었고, 악마는 바로 그 비웃음과 과도한 부인 뒤에 숨어 마음껏 세상을 조종했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도 메피스토와 파우스트의 계약은 아무도 보지 않는 밀실에서 이루어졌다. 영혼을 매개로 한 거래는 영원한 비밀일 것 같았지만, 계약을 맺은 자의 마음속에는 늘 발각에 대한 극심한 공포가 닻을 내리고 있다. 거래가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 자신이 누리는 지위와 권력, 그리고 가짜 이성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될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만약 파우스트가 메피스토와의 거래를 폭로당할 위기에 처했다면, 그는 제 발이 저린 나머지 누구보다 소리 높여 "악마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메피스토를 말하는 자야말로 미친 자다!"라며 과도하게 목소리를 높였을 것이다.
험지 생존자들의 이상한 과잉 부정, 그리고 기묘한 침묵
이 비극적인 문학적 메타포는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 현장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과거 개혁신당 이준석 전 대표가 전한길, 김미영 대표 등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인사들과의 토론회에 나섰을 때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국민적 의혹을 투명하게 밝히고 함께 검증해 보자는 상대측의 호소와 제안에는 귀를 닫은 채, "부정선거는 무조건 존재하지 않으며, 이를 말하는 자들은 예외 없이 몰상식한 음모론에 중독된 자들"이라며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선제공격을 퍼부었다. 나아가 그는 "부정선거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정계에서 은퇴하겠다"며 정치적 생명을 건 극단적인 배수진까지 치며 검증의 길목을 막아섰다. 최근 그가 대표직에서 물러난 행보가 과연 과거 배수진에 대한 책임의 시작인지, 아니면 또 다른 정치적 술수인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어디 그뿐인가. 최근 선관위 국정조사 특위 위원장을 자처한 윤상현 의원의 궤적은 더욱 기이하다. 과거 민경욱 전 의원과 박주현 변호사 등 부정선거 규명 진영을 의원실로 불러 직접 장시간 집중 과외를 받으며 "진짜 부정선거가 있구나"라는 취지의 독백과 수긍을 했던 그가, 이제 와서는 또다시 부정선거를 단칼에 음모론으로 몰아세우며 차단의 선봉에 서고 있다.
자신의 정계 은퇴까지 담보로 걸며 상대방을 음모론자로 매도하거나, 스스로 진실의 일면을 확인하고도 다시 시치미를 떼며 검증을 원천 차단하려는 이들의 행태는, 역설적으로 그 진실이 수면 위로 올랐을 때 자신이 치러야 할 대가가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스스로 입증하는 모순에 빠진다.
이들에게는 기묘한 공통점이 존재한다. 거대 정당의 후광이 없는 소수 정당의 후보이거나 무소속으로, 선거 구도상 당선이 극단적으로 어려운 '최악의 험지'에서 당선되었다는 사실이다.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면 이들의 당선은 뛰어난 개인기와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정치적 결과물이어야 마땅하다. 오히려 유권자의 바람을 누구보다 앞서 대변해야 할 자들이다.
그러나 전 국민적으로 부정선거 의혹을 명명백백히 밝혀달라는 목소리가 드높은 지금, 왜 이들은 검증의 문을 열기는커녕 정치적 생명까지 걸거나 돌연 태도를 바꿔가며 그 문을 걸어 잠그고 "그런 것은 없다"며 못을 박는가.
이처럼 비상식적인 과잉 부정은 단순한 정치적 소신의 표출이라 보기 어렵다. 국민에게 위임받아야 할 권력마저 사유화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음지에서 이 세계를 주무르는 주동 세력, 곧 '민주사회의 악마'와 암약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짙은 의심을 자아낸다. 의혹 규명을 앞장서 차단하는 대가로 차기 권력과 지속적인 정치적 생명을 보증받은 것인가. 악마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토록 철통같은 방어벽을 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더욱 수상한 것은 대통령까지 차지한 거대 여당의 자세다. 이 시스템의 가장 큰 수혜자이자 당사자로 지목받는 민주당은 그 어떤 국회의원도, 그 어떤 지자체장도 부정선거의 '부'자조차 언급하지 않은 채 철저한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래도 한 명쯤은 ‘민주주의 꽃을 위해 진실을 까보자!’할 법한데 말이다. 이 거대한 침묵은 어떤 거대한 카르텔의 압박이 있는 것은 아닌지를 추측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또 다른 전선에서 어둠을 위해 싸우는 자들
이 기묘한 현상은 우리에게 서늘한 질문을 던진다. 수혜자들은 늘 침묵으로 진실을 덮고, 비민주당 진영에서조차 '부정선거는 음모론'이라 소리치는 자들이 뛰쳐나와 진실규명 세력에게 납득할 수 없는 비판을 쏟아낸다. 어둠 속 거래가 있지 않고서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진실에 떳떳한 자는 담대하게 검증을 받아들인다. 투명한 상자 속을 보여주면 깔끔하게 끝날 일에 왜 그토록 과도한 정치적 레토릭과 '정계 은퇴'라는 극단적 배수진, 그리고 강요된 부정이 필요한가. 거짓의 기득권에 영혼을 판 자들이 부르짖는 "악마는 없다"라는 외침은, 역설적으로 그 밀실에 악마가 버티고 있음을 증언하는 가장 선명한 자백이다.
거센 시대의 파도, 열리는 진실의 문
그러나 거짓과 은폐로 쌓아 올린 유예의 시간은 종막을 향해 가고 있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저물어야 비로소 날갯짓을 시작한다. 밀실 속 거래로 덮여 있던 거짓의 시대가 끝자락에 다다랐고 마침내 진실의 모습이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
올림픽공원에서 시작된 자발적 시민 혁명의 불길,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의 외침은 이제 올림픽공원의 담장을 넘어 전국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이것은 밀실 속 은밀한 거래와 거짓을 밝혀내는 거대한 민심의 파도다.
밀려오는 거센 바다의 조수를 한 가닥의 세 치 혀나 얄팍한 말장난, 혹은 극단적인 정치적 배수진으로 막아설 수 없다. 전국으로 확산된 이 진실의 파도는 이제 그 어떤 부정으로도 막아설 수 없다. 온갖 왜곡과 은폐의 시도 속에서도, 거대하게 일어선 시민의 이름 앞에 이제 진실의 문이 열릴 것이다.
이제 거짓을 덮을 수도 없거니와 더 이상 덮일 수도 없다. 어둠 속의 주체와 밀실에서 거래했던 자들의 가장 올바른 선택은, 거짓을 덮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국민 앞에 명명백백히 밝히고 진심으로 사과하며 용서를 구하는 길뿐이다. 그것만이 그들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살길이다.
민병곤 정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