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지방자치를 흔히 민주화의 산물로 설명한다. 1991년 지방의회 선거가 부활했고 1995년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통해 지방자치단체장까지 주민이 직접 선출하게 되었으니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지방자치의 역사를 1987년 이후에서 시작하면 대한민국 정치사의 중요한 절반을 놓치게 된다. 한국 지방자치는 민주화 이후 새로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다. 그 출발은 1948년 대한민국 건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8년 7월17일 공포된 제헌헌법은 지방자치를 국가의 기본 제도 가운데 하나로 규정했다. 지방자치단체가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행정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도록 했으며 지방자치단체에 의회를 두도록 했다. 대한민국을 설계한 제헌의회가 처음부터 지방자치를 헌법 질서 안에 넣었던 것이다.
헌법의 선언은 곧 법률로 이어졌다. 1949년 7월 「지방자치법」이 제정되면서 지방자치단체의 조직과 지방의회 운영을 위한 제도적 틀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당시 대한민국의 형편은 지방선거를 곧바로 치르기 어려웠다. 정부 수립 직후의 정치적 혼란과 치안 불안이 계속됐고 1950년에는 한국전쟁까지 발발했다.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정부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지방자치를 미루지 않았다. 1952년 4월 25일 시·읍·면의회 의원 선거가 실시되었고 5월10일에는 도의회 의원 선거가 뒤따랐다. 전쟁 때문에 서울과 경기·강원의 일부 지역에서는 선거를 치르지 못했지만 선거가 가능한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직접 지역 대표를 뽑았다. 이것이 대한민국 최초의 지방선거였다.
이 사실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당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고 전선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피란민이 넘쳐났고 국가재정도 극도로 어려웠다. 그런 조건에서 국회의원 선거만 실시한 것이 아니라 지방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주민선거까지 시행했다. 지방자치가 건국 대한민국의 제도 안에 실제로 들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물론 1950년대 지방자치를 오늘날의 지방자치와 같은 수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중앙정부의 권한이 강했고 지방재정은 취약했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선출 방식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그러나 제도가 미숙했다는 것과 제도가 없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주민이 지방의원을 선출하고 지방의회가 활동했다는 사실은 그대로 남는다. 1956년에도 지방선거가 이어지면서 대한민국 국민은 이미 1950년대부터 중앙정치와 지방정치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었다.
4·19혁명 이후에는 지방자치가 한 단계 더 확대되었다. 1960년 지방자치법 개정을 거쳐 그해 12월 실시된 지방선거에서는 지방의원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장도 주민의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했다. 서울특별시장과 도지사, 시장·읍장·면장까지 주민이 직접 뽑는 제도가 등장했다. 오늘날 지방자치의 핵심으로 여기는 단체장 직선제를 대한민국은 이미 1960년에 경험했던 것이다.
이 흐름은 1961년 5·16으로 끊겼다. 지방의회가 해산되고 지방자치단체장은 중앙정부가 임명하는 체제로 바뀌었다. 이후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강력한 중앙집권적 행정체제를 유지했다. 지방행정기관은 존재했지만 주민이 선출한 지방의회와 단체장을 중심으로 지역을 운영한다는 정치적 의미의 지방자치는 사실상 중단되었다.
여기에는 당시 대한민국이 선택한 국가발전 방식도 작용했다. 정부는 제한된 자본과 행정력을 중앙에 집중하여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했다. 산업단지와 고속도로, 항만, 발전소 같은 대규모 사업을 중앙정부가 계획하고 자원을 배분했다. 이러한 개발국가 체제는 압축적인 산업화에 유리했지만 지방정부의 독자적 권한을 확대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있었다. 지방은 상당 기간 중앙정부가 결정한 정책을 집행하는 행정 단위의 성격을 강하게 갖게 되었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1980년대 후반이었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지역의 대표 역시 주민이 직접 뽑아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다. 이에 따라 1991년 기초의회와 광역의회 선거가 실시되었다. 1961년 지방의회가 사라진 지 약 30년 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1991년의 지방자치는 절반의 복원이었다. 주민이 지방의원을 선출했지만 지방자치단체장은 여전히 임명제였다. 지방의회는 주민의 선택으로 구성되면서 정작 행정을 책임지는 단체장은 중앙정부가 임명하는 구조가 남아 있었다.
현재와 같은 지방자치 체제가 만들어진 것은 1995년 6월 27일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였다.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을 주민이 직접 선출했다. 지방의회와 지방행정부가 모두 주민의 투표를 통해 구성되는 체제가 확립되었다. 1960년에 경험했다가 사라졌던 단체장 직선제가 35년 만에 돌아온 것이다.
따라서 1995년을 대한민국 지방자치의 ‘시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1995년은 시작이 아니라 전면적인 복원과 재정착의 시점이라고 보는 편이 역사에 부합한다. 헌법적 출발은 1948년이고 법률적 기반은 1949년에 마련되었으며 실제 지방선거는 1952년에 시작되었다. 1960년에는 단체장 직선제까지 시행되었다.
이 구분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하다. 지방자치를 민주화 세력이 처음 만들어낸 제도로 설명하면 1948년 대한민국이 어떠한 정치제도를 지향했는지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건국 당시 대한민국은 대통령제와 국회, 사법부만 만든 것이 아니다. 지방자치 역시 헌법적 국가질서 안에 포함시켰다. 실제 제도가 완벽하게 작동했느냐는 별도의 평가 문제다. 제도의 존재와 그 운영상의 한계는 구별해서 보아야 한다.
반대로 산업화 시대의 지방자치 중단 역시 한쪽 면만 보아서는 부족하다. 중앙집권적 개발국가는 지방의 정치적 자율성을 제약했지만 국가 자원을 집중하여 산업화를 추진하는 데 상당한 동원력을 발휘했다. 지방자치의 중단과 경제개발의 성과는 서로 다른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산업화의 성과가 지방자치 중단을 정당화하는 것도 아니며 지방자치가 중단되었다고 해서 그 시대 국가발전의 성과까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늘날 더 중요한 문제는 지방자치가 부활했느냐 아니냐가 아니다. 1995년 이후 30년 이상 지방자치를 실시했으므로 이제는 그 성과를 따질 때가 되었다. 지방선거가 정례화되고 지방정부의 권한이 확대되었지만 지방자치의 질까지 그만큼 높아졌는지는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가 지방재정이다. 상당수 지방자치단체는 자체 세입만으로 필요한 행정서비스를 충당하기 어렵다. 중앙정부의 지방교부세와 각종 보조금에 상당 부분 의존한다. 이런 구조에서는 지방정부가 주민보다 중앙정부를 바라보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서울을 찾아가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하는 능력이 정치적 실적으로 평가되는 모습도 나타난다. 재정적 책임이 약한 자치는 자칫 중앙정부의 돈을 지역별로 나누어 쓰는 제도로 변질될 수 있다.
지방정치 자체의 문제도 있다. 단체장과 지방의회가 지역 개발사업과 예산을 둘러싸고 이해관계자와 결합하는 사례가 반복되어 왔다. 인구가 감소하는 지역에서도 경쟁적으로 청사와 문화시설, 각종 기념시설을 건설하고 경제성이 낮은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경우가 있다. 선거를 통해 권력을 얻었다는 사실이 정책의 효율성까지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지방자치가 본격화된 1990년대와 전혀 다른 인구구조에 들어섰다. 수도권에는 인구와 기업, 대학, 일자리가 집중되는 반면 많은 지방에서는 청년 인구가 빠져나가고 있다. 일부 군 단위 지역은 행정구역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장기적으로 부담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숫자와 행정구역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권한과 예산만 늘리는 방식이 지속 가능한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방자치는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주민의 생활을 더 편리하게 만들고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여야 한다. 중앙정부보다 지방정부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은 지방에 맡기고 국가 전체의 통일성이 필요한 업무는 중앙정부가 담당해야 한다. 권한을 넘겼다면 그 권한을 행사한 결과에 대한 책임도 지방정부가 져야 한다. 권한은 지방에 있고 비용은 중앙정부가 부담하는 구조라면 책임정치가 작동하기 어렵다.
대한민국 지방자치의 역사는 그래서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건국과 함께 설계되었고, 전쟁 중에 처음 시행되었으며, 제2공화국에서 확대되었다가 1961년 중단되었고, 민주화 이후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1948년과 1952년을 빼고 지방자치를 말해서도 안 되고, 1991년과 1995년의 복원 의미를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
이제 대한민국 지방자치가 물어야 할 질문은 ‘얼마나 더 많은 권한을 지방에 줄 것인가’ 하나가 아니다. 그 권한을 행사할 능력이 있는가, 주민에게 책임지고 있는가, 스스로 감당할 재정기반이 있는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중앙정부의 돈을 나누어 쓰는 제도가 아니다. 주민이 자신의 지역을 선택하고, 그 선택의 비용과 성과에도 책임지는 정치제도다. 대한민국은 1948년 그 원리를 헌법에 넣었고 1952년 전쟁 중에도 지방선거를 실시했다. 1961년 끊어진 제도를 1991년과 1995년에 되살렸다. 이제 남은 과제는 지방자치의 부활이 아니라 지방자치의 내실이다.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는 것부터 그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 松山(송산) 정광제
시사 칼럼니스트이자 시인, 역사·철학 연구자. 이승만학당 이사와 철학포럼 리케이온 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자유주의작가회의 사무총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시집 ‘하다못해 가슴에라도’외 3권이 있으며 공역 ‘후크고지의 영웅들’과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 ‘문학의 세계와 사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