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턴 해리스 워커(왼쪽) 장군과 ‘한국을 구한 사람(the man who saved Korea)’이라는 부제가 붙은 그의 전기. [사진=퍼블릭도메인]
하봉규 부경대학교 명예교수, 유엔연구소 소장지난 23일은 월턴 해리스 워커(Walton Harris Walker, 1889~1950) 장군의 기일이었다. 그는 6·25전쟁 초기 미 제8군 사령관으로 대한민국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낸 영웅이다.
워커 장군의 일대기를 기록한 책은 두 권이 있다. 그중 한 권의 부제목이 ‘한국을 구한 사람(the man who saved Korea)’이다.
직접 워커의 계급장을 달아준 패튼 장군
오랫동안 전쟁사와 군인의 지도력을 강의해 온 필자가 주목한 것은 ‘낙동강 전선(일명 워커 라인)’이다. 제1·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미군이 아시아 공산주의와의 대결에서 거둔 유일한 대승리이기 때문이다. 미군은 베트남전에서 워커 라인을 차용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최고 용장 패튼(George S. Patton) 장군이 자신의 3성 장군 계급장을 직접 달아 준 인물이 불독(Bulldog)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워커 장군이었다.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든 1945년 4월, 패튼 장군은 자신의 지휘하에 ‘유령 군단’이라 불릴 만큼 전격적인 공을 세운 워커 소장의 3성 장군(중장) 진급이 결정되자, 자신이 달고 있던 계급장을 직접 떼어 워커의 어깨에 달아 주며 그의 용맹함을 치하했다.
안타깝게도 이들 두 사람 모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군의 트럭에 치여 사망했다. 패튼장군이 1945년 12월21일에 먼저 세상을 뜨고 워커 장군은 1950년 12월23일 그 뒤를 따랐다.
6·25전쟁 당시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의 긴급 명령으로 지상군사령관(8군)으로 참전한 워커 장군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예상치 못한 북한군의 강력함이었다.
탱크 등 화력뿐 아니라 병력에서도 압도당한 미군과 국군은 패퇴를 거듭하며 불과 1개월 만에 국토의 80%가 유린당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다. “미군을 보면 북한군은 놀라서 도망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맥아더 사령부는 결국 전면 후퇴를 결정하기에 이른다.
물러서지 마라! 죽음으로 지켜라!
그러나 평소 과묵했던 워커 장군은 겁에 질린 한·미 장병들 앞에서 “I will stay here to protect Korea until my death(나는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이 자리에서 한국을 지켜낼 것이다)”는 사자후와 함께 “Stand or die(물러서지 마라, 죽음으로 지켜라).”라는 최후 명령을 내린다.
6·25전쟁 최대 위기로 꼽히는 낙동강전투에서 미 24사단 병력이 부교를 타고 낙동강을 도하하고 있다. [사진=퍼블릭도메인]
동서 90km, 남북 150km에 이르는 낙동강 라인은 지형·도시·전략이 결합된 거대한 방어선이다. 이는 20세기판 카이사르(Julius Caesar·시저)의 알레시아 공방전이라 불릴 만큼, 지휘관의 탁월한 전략과 결사항전의 의지가 결집된 역사적인 승부처였다.
알레시아 전투 당시 카이사르는 불과 5만의 군세로 2중 장벽을 구축하여 베르킨게토릭스가 이끄는 34만(성내 8만, 성외 26만) 갈리아 총공세에서 대승리로 불멸의 업적을 이룬 바 있다.
낙동강 전선은 육군의 참호전과 공군·해병대의 입체적인 기동전이 결합된 전략적 혁신의 장이었다. 이 전투에서 워커 장군이 보여준 용기와 지도력, 그리고 탁월한 전략은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하고 인천상륙작전의 결정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워커 장군은 북진과 관련해 맥아더 장군의 속전속결 전략에 반대 의사를 개진하기도 했다. 그는 혹한이라는 계절적 특수성과 배후국의 변수를 감안해 신중론을 펼쳤지만 결국 총사령관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후 북진을 계속하던 중 그의 예상대로 중공군이 참전해 국군은 궤멸되고 전력 복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워커 장군 전사로 한국은 1·4 후퇴 직면
중공군의 총공세에 맞서 수도권 방어선을 진두지휘하던 워커 장군의 갑작스러운 전사는 유엔군에게 커다란 충격과 혼란을 안겼으며, 이는 결국 1·4 후퇴의 한 원인이 되었다.
6·25 전쟁 당시 외아들 샘 워커와 함께 참전했던 워커 장군은 훗날 손자까지 한국에 파병되면서 3대에 걸쳐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
‘1984’와 ‘동물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국민을 망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그들 역사의 의미를 부정하고 말살하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역사와 지성, 그리고 독서를 잊은 민족에게는 자유도 미래도 없다는 것이 역사가 증명하는 냉엄한 진리이다.
부경대학교 명예교수, 유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