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13일 국회 국민의힘 당대표 회의실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영국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는 전혀 다른 시대의 인물이지만, 권력의 위치는 놀랍도록 닮아 있다. 두 사람 모두 사회가 내전에 가까울 정도로 극심하게 분열된 시점에 권력의 중심에 섰다.
엘리자베스는 가톨릭과 개신교가 충돌하던 영국을 물려받았고, 장동혁은 윤어게인과 반윤, 정통 보수와 이준석 계열, 레거시와 뉴미디어가 충돌하는 보수 정치를 물려받았다.
그리고 둘 다 공통적으로 자신의 고유한 권력 기반이 약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누구에게도 절대적 충성을 받지 못했고, 동시에 누구에게도 완전히 포획되지 않았다.
이런 인물들은 늘 만만하게 보인다. 귀족들은 엘리자베스를 쉽게 조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유럽의 왕들은 영국을 혼인으로 흡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의 장동혁 역시 마찬가지다. 윤어게인 쪽은 “장동혁은 결국 우리에게 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이준석 쪽은 “지금은 밀당하지만 결국 확장을 위해 우리를 택할 것”이라고 믿는다.
양쪽 모두 그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압박한다.
엘리자베스 1세는 이 구도를 누구보다 잘 활용했다. 그녀는 결혼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결혼할 것처럼 행동했다.
스페인의 펠리페 2세에게, 프랑스의 앙주 공작에게, 신성로마제국의 왕자들에게 모두 희망을 주었다. 약혼 반지를 주고받고, 공개적으로 애정을 표현하고, 협상 문서를 만들었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 초상화(1585).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는 언제나 “국민의 뜻” “종교 문제” “국가의 안보”를 이유로 한발 물러섰다. 결혼이 무산될 때마다 상대는 분노했지만, 그 사이 영국은 공격받지 않았고, 엘리자베스의 입지는 오히려 더 공고해졌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음으로써 외교의 중심이 되었다.
지금 장동혁이 이준석과 보이는 거리도 이와 닮아있다. 겉으로 보면 그는 이준석과 손을 잡을 듯하다. 레거시 언론과 중도층을 향해 팔을 벌리고, “확장”의 언어를 사용하고, 윤어게인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다.
많은 사람은 이것을 약혼 선언처럼 읽는다. 그러나 엘리자베스가 그랬듯, 장동혁에게 중요한 것은 실제 결합이 아니라 결합의 가능성이다.
이준석과 완전히 결합하는 순간 그는 당의 정통성과 핵심 지지층을 잃는다. 윤어게인과 완전히 결합하는 순간 그는 중도·청년·레거시 확장의 문을 닫는다. 그래서 그는 지금 어느 쪽도 택하지 않는다.
대신 양쪽 모두가 “저 사람이 우리를 필요로 한다”고 믿게 만든다. 이 상태가 유지되는 한, 두 세력은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장동혁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바로 이 구조가 그의 실질적 권력이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결단이 아니라, 너무 이른 결단이다. 엘리자베스는 결혼을 미루며 45년을 지배했다.
장동혁 역시 지금 ‘결혼하지 않는 정치’의 한복판에 있다. 이준석과의 팔 벌린 제스처는 약혼일 수 있지만, 혼인은 아니다. 그는 지금도 시간을 사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주도권은 조금씩 그의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엘리자베스가 “나는 이미 국민과 결혼했다”고 말했듯, 장동혁은 “모든 것은 당원의 뜻에 따른다”고 말한다.
그가 쇄신안에서 전당원투표를 최고위 의사결정과 결합해 제도화하겠다고 밝힌 것, 당명 변경을 전당원투표에 부친 것, 그리고 이준석과의 회동과 한동훈을 향한 강경한 메시지를 동시에 던진 것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 심규진 교수
스페인IE대학교 디지털미디어학과 조교수. 전 국방부 정책자문위원과 전 여의도연구원 데이터랩 실장을 역임했으며 호주 멜버른 대학교 전임교수와 싱가포르 경영대학교 조교수로 근무했다. 저서에 ‘K-드라마 윤석열’ ‘하이퍼 젠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