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진 피고석, 남은 책임의 자리. 법원은 공동정범을 처벌했지만 설계자는 여전히 법정 밖에 있다. 한미일보 그래픽
대장동 1심 판결문은 법이 진실의 절반만을 말했을 때 어떤 모습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을 장기간 금품 제공과 결탁을 통해 진행된 일련의 부패범죄로 규정했다. 그 판단 자체는 명확했다. 사업구조가 처음부터 민간의 이익에 맞춰 설계됐고, 성남도시개발공사가 확정이익만을 취하며 초과이익 환수 조항을 삭제한 것은 의도된 결정이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즉 대장동 배임은 행정 착오가 아니라 의도된 설계의 결과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판결문이 멈춘 곳은 바로 그 의도의 주체였다. 재판부는 민간업자들이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성남시 수뇌부의 확실한 보장이 필요했다고 적시했지만, 그 수뇌부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에게 직접 보고가 이뤄졌다는 사실이 판결문 곳곳에 등장하지만, 법은 그 보고의 정치적 무게를 외면했다. 법은 구조를 봤지만, 그 구조를 만든 손의 이름을 지웠다.
법원은 유동규와 김만배를 공범으로 판단했다. 공공의 내부결정권자와 민간의 이익추구자를 ‘공동 설계자’로 규정하며 두 사람 모두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공공의 권력을 이용한 자와 그 권력을 매수한 자를 같은 수준의 죄로 본 셈이다. 그러나 뇌물의 법리는 분명하다. 돈을 준 자보다 받은 자의 죄가 무겁다. 그럼에도 법원은 공무원의 배신과 민간의 탐욕을 대칭의 죄로 봉합했다. 이는 공권력의 부패를 사익의 탐욕과 동일한 수준으로 끌어내린, 사법의 위험한 타협이었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4천억 원대 손해액을 명확히 산정할 수 없다고 하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을 부정하고, 형법상 업무상 배임만 인정했다. 고의와 구조를 인정하고도 처벌의 강도를 낮춘 것이다. 법은 진실을 절반만 인정함으로써 스스로 무력해졌다. 수뇌부의 보장이 있었다고 적시하면서도 그 책임을 유동규의 실무적 행위로 한정했고, 결과적으로 이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정치적 결정권자는 사법의 조명 밖으로 밀려났다.
유동규는 시장이 아니었다. 그는 성남시가 출자한 공사의 실무 책임자였고, 공공의 결정을 집행하는 중간관리자였다. 그럼에도 법원은 시장의 공약사업이었던 대장동 개발의 형사 책임을 그에게 모두 전가했다. 재판부의 침묵은 공직사회의 구조적 배임을 개인의 탐욕으로 축소했고, 사법의 칼끝은 권력이 아닌 하급 실무자의 어깨에서 멈췄다.
이번 판결문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법원은 정치적 압력의 양쪽에서 균형을 잡으려 한 끝에, 진실의 중심을 비켜갔다. ‘성남시 수뇌부’라는 표현으로 윗선을 암시하면서도 실명을 피했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유동규와 김만배를 공동정범으로 묶었다. 이 구조는 정의의 승리가 아니라 책임의 재배치였다. 공범을 세워 책임을 봉합한 사법의 정치, 그것이 이번 판결의 실체다.
대장동 사건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법원은 이번 판결로 구조의 진실을 드러냈지만, 권력의 진실은 여전히 남았다. 의도된 설계를 인정했다면, 설계의 승인자도 밝혀야 한다. 법이 스스로 진실의 절반을 감춘다면,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 정치다. 이 판결문이 비겁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법은 진실을 알았으나, 그 진실을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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