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항에 쌓여있는 컨테이너. [사진 =연합뉴스]
선택의 비용이 커지는 시대, 세계와 한국은 어디로 가는가
2026년은 새로운 위기가 갑자기 등장하는 해라기보다 이미 누적돼 온 변수들이 동시에 결정을 요구하는 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 질서는 안정과 불안의 경계에서 장기적 전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으며 정치와 경제, 안보와 산업의 경계는 점점 흐려지고 있다. 이 변화는 개별 사건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으며 한국 역시 이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세계와 한국을 관통하는 환경 변화를 종합하면 다음 10가지 이슈가 2026년의 방향을 규정할 핵심 변수로 꼽힌다.
“미·중 충돌과 ‘결정의 해’로 접어든 세계 질서”
① 미·중 전략 경쟁의 임계 국면 진입
대만 문제를 축으로 한, 미·중 갈등은 전면 충돌 여부보다 군사적 오판 가능성이 커지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는 동북아 안보 환경 전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이라는 구조 속에 놓인 한국의 외교·안보 선택지를 좁히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② 중국 경제의 구조 둔화 고착
중국은 더 이상 고성장을 통해 세계 경제를 견인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게 됐으며 내수 활성화와 위험 관리에 초점을 둔 방어적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교역 환경의 변화를 의미하는 동시에, 한국의 대중 수출 구조와 산업 경쟁력에 지속적인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③ 미국 중간선거를 전후한 동맹 압박 강화
2026년 미국 중간선거를 계기로 방위비 분담, 통상, 공급망 재편 문제가 하나의 패키지로 제시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한미 관계의 안정성과 함께 한국이 어느 수준까지 정책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변수로 작동한다.
“저성장·전쟁·기술 패권, 동시에 작동하는 글로벌 압박”
④ 우크라이나와 중동을 중심으로 한 전쟁의 장기화
확전은 제한되는 대신 소모전이 지속되면서 에너지와 원자재, 해상 물류 불안이 상수로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경제는 점차 평시 비용이 아니라 준전시 비용을 전제로 작동하는 구조에 적응하고 있다.
⑤ 글로벌 저성장 고착과 정책 여력 소진
고부채와 고금리의 후유증 속에서 주요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대응 여력은 제한되고 있으며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과거와 같은 강력한 정책 수단을 동원하기 어려운 환경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⑥ AI·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기술 패권 경쟁의 심화
첨단 기술은 성장 동력인 동시에 안보 자산으로 취급되고 있으며 기술 협력은 점점 블록화되고 있다. 이는 한국 산업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선택의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 된다.
⑦ 자유무역 질서의 약화와 블록형 교역의 고착
WTO 체제의 영향력은 약화되고 교역은 진영과 동맹을 기준으로 재편되고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는 구조적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⑧ 글로벌 금융 불안 가능성의 상존
상업용 부동산과 그림자 금융, 신흥국 외채 등 취약 지점이 누적되면서 금융 불안은 단일 사건보다 연쇄 전염의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환율과 자본 이동의 변동성 확대도 주요 변수다.
⑨ 기후·에너지 리스크의 정치화
기후 변화 대응과 에너지 전환은 환경 이슈를 넘어 산업과 통상, 안보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으며, 탄소 규제와 에너지 정책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⑩ 정치 불안정과 통제 모델의 확산
세계 곳곳에서 포퓰리즘과 강권 통치가 강화되며, 선거와 여론, 정보 통제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정치 리스크는 금융과 투자 판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
“회색지대 전략의 한계, ‘셰셰’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이유”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국제 환경의 악화를 의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문제는 이 변화 속에서 한국이 그동안 유지해 온 외교 전략이 여전히 유효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주목되는 것은 그동안 한국 외교가 활용해 온 이른바 ‘회색지대 전략’의 한계다. 명확한 편을 들지 않으면서 행동과 발언을 분리해 온 이 전략은 과거에는 미·중 모두에게 관리 가능한 선택지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중국을 향한 이른바 ‘셰셰 전략’은 말의 모호성을 통해 갈등을 유예하는 방식으로 일정한 효과를 냈다. 그러나 2026년을 전후한 국면에서는 이 같은 언어 중심의 회색지대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 모두 한국의 태도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판단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과 후방기지 활용, 공급망 참여, 제재 동참 여부 등 구체적 행동이 기준이 되면서 모호한 메시지는 전략이 아니라 결정 회피로 해석될 위험이 커졌다.
회색지대는 질문의 국면에서는 완충 장치였지만, 결정이 요구되는 국면에서는 오히려 압박 지대로 전환되고 있다. 이 변화는 2026년이 기존 외교 전략의 연장이 아닌, 출구 전략을 요구하는 시점임을 보여준다.
“이재명이 결정해야 할 3가지”
이 지점에서 선택의 주체는 전략이 아니라 정치권력으로 바뀐다.
2026년을 앞두고 이재명 대통령이 마주하게 될 문제는 노선을 바꾸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더 이상 유예할 수 없는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가에 가깝다.
회색지대 전략이 질문의 국면에서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해왔다면 이제는 그 전략이 끝나는 시점을 관리해야 하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① 대만 유사시 한국의 행동 상한선
이는 참전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주한미군과 후방기지, 정보·물류 지원 등 한국 영토와 인프라가 어디까지 활용될 수 있는지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다. 이 선이 내부적으로 정리되지 않는다면 한국의 역할은 서울이 아니라 외부에서 규정될 가능성이 크다.
② 한미동맹의 작동 방식
방위비와 안보를 넘어 통상과 공급망, 기술 협력까지 묶여 들어오는 압박 속에서 동맹을 자동 정렬로 유지할 것인지, 사안별 조건부 정렬로 재정의할 것인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 기준 없는 동맹은 가장 빠르게 비용이 누적되는 구조다.
③ 중국과 관계 정리 ‘관리 외교→구조 조정’
중국 경제 둔화와 체제 불안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대중 의존 구조를 어디까지 줄이고 어디까지 유지할 것인지를 결정하지 않으면, 외교·산업·노동 문제가 동시에 압축돼 표면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 역시 방향 선언이 아니라 범위 설정의 문제다.
이 세 가지 선택의 공통점은 결단을 미루면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라 미루는 순간 비용이 커지는 문제라는 점이다.
선택하지 않는 선택은 더 이상 가능한 전략이 아니다.
“민생으로 돌아오는 선택의 비용”
이러한 글로벌 10대 이슈는 결국 물가와 임금, 고용으로 귀결된다.
전쟁과 에너지 불안은 생활 물가를 끌어올리고, 기술 전환과 교역 질서 변화는 임금 격차를 확대하며, 저성장 고착은 고용의 질을 떨어뜨린다.
2026년 민생의 핵심은 물가가 오르느냐 내리느냐가 아니라, 왜 안정되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됐는지를 이해하는 데 있다.
특히 물가는 단기적 통화정책으로 조정 가능한 변수가 아니라 비용 구조 전반의 영향을 받는 지표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에너지 가격과 환율 변동성, 기후 리스크에 따른 생산 비용 상승은 일회성 충격이 아니라 상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물가 안정이 정책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 환경과 산업 구조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임금 역시 단일한 상승과 하락의 문제로 설명되기 어렵다.
반도체와 AI 등 일부 첨단 산업에서는 인력 확보 경쟁으로 임금 상승 압력이 나타나는 반면, 전통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는 수익성 악화로 임금 여력이 줄어드는 양극화가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평균 임금이 아니라 산업과 직종 간 격차가 체감 민생을 좌우하는 구조다.
고용 문제도 마찬가지다.
저성장 환경이 고착되면서 일자리의 절대적 증가는 제한되고 이동과 재편이 중심이 된다. 기술 전환과 산업 구조 변화는 일부 일자리를 창출하는 동시에 다른 일자리를 빠르게 소멸시키며, 외국인 노동 확대는 고용의 양보다 질과 안정성에 대한 논쟁을 키울 수 있다.
2026년 고용 문제는 실업률보다 고용 불안의 체감도가 더 중요한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2026년은 위기를 제거하는 해가 아니라 위기의 비용을 선택하는 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 안에서 어떤 비용을 먼저 감수하고 어떤 비용을 줄일 것인지는 여전히 정책의 영역이다. 외교와 경제, 안보와 산업을 분리해 바라보는 시각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2026년의 한국은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피할 수 있는 국면을 이미 지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떤 선택이 더 큰 비용을 남기지 않는지를 판단하는 일이다.
김영 기자